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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Journal of Community Living Science

ISSN : 1229-8565 (Print) / 2287-5190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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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Journal of Community Living Science

ISSN : 1229-8565 (Print) / 2287-5190 (Online)

Editorial Board

The Korean Journal of Community Living Science - Vol. 31 , No. 4

[ Article ]
The Korean Journal of Community Living Science - Vol. 31, No. 4, pp. 541-557
Abbreviation: Korean J Community Living Sci
ISSN: 1229-8565 (Print) 2287-5190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Nov 2020
Received 17 Jun 2020 Revised 20 Oct 2020 Accepted 08 Nov 2020
DOI: https://doi.org/10.7856/kjcls.2020.31.4.541

경남 무형문화재 문창제놀이 추도무 복식의 연구
김여숙
창원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A Study on the Memorial Dancing Costume Style at the Moonchang Festival, an Intangible Cultural Asset of Gyongsangnam-do
Yeo-Sook Kim
Professor, Dept. of Clothing and Textiles, Changwon National University, Changwon, Korea
Correspondence to : Yeo-Sook Kim Tel: +82-55-213-3493 E-mail: yeosook@changwon.ac.kr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Funding Information ▼

Abstract

This paper aims to represent the right style of costumes worn in the 2nd episodic memorial dancing event at the Moonchang Festival, the 5th cultural heritage of Gyongsangnam-do. Different styles of costumes were worn at various events between 1998 and 2019. Thus, it became necessary to stipulate the exact costume for memorial dancing to preserve its traditionality and historicity as a cultural asset. It led me to analyze the present style of these costumes and establish the memorial dancing costume style suitable for the ritual, characteristic of the Moonchang Festival through detailed historical investigation. The festival has a dual structure of ritual and play, and in its first and second episodes, an official gisaeng leads a memorial dance of ritual character on the initiative of an official authority. The official authority plays a leading role in setting up the memorial dancing costume style, which encompasses the styles of drum dancing, traditional rituals, and spirit propitiation. In this respect, therefore, it appears to be possible to represent the memorial dancing costume style exactly by examining the ritual costumes of the Chosen Dynasty. In conclusion, it was observed that the memorial dancing costume style should be a mourning dress named Cheondam Dress.


Keywords: Moonchang festival, memorial dancing, Cheondam dress, costume for drum dancing, ritual costume

I. 서론

경상남도의 무형문화재 제5호인 문창제놀이(이하 문창제놀이라 함)는 병자호란 때 창원도호부 부리였던 황시헌(1606~1636) 공을 추모하고, 그와 함께 한 군노들의 죽음에 대한 원혼을 달래는 진혼을 재현하는 놀이이다.

대부분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한 전통 놀이에서는 인물을 추모하는 제례가 포함되어 있으며,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행하는 제례의식을 통해 관람객은 역사적 인물을 추앙하게 되는 동시에 공동체적 집단성을 공유하게 된다. 이때 착용하는 의복은 전통놀이의 주제와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즉 전통 놀이에 나타난 제례복식의 역할은 표현적 기능을 표적으로 갖고 있으면서 도구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일반 의상과 다르게 목적이 뚜렷한 공연 예술 복식이라 할 수 있다(Ma & Kim 2015).

전통 놀이의 내용과 복식은 시대를 거치며 사람들의 생각이 집결된 것으로, 개인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의 소산으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사회상과 정신세계를 반영하게 된다. Yi(2001)에 의하면 전통놀이의 복식은 계속적으로 변화하다가 문화재 지정을 기준으로 새로운 형태로 정형화되는데, 일반적으로 장식이 과장되어 나타나는 등의 변형을 거치게 된다. 그 원인은 문화재 지정 과정에서의 가시성 추구, 서양 연극의 영향으로 인한 연극적인 형식에의 집착, 한국 복식에 대한 미숙한 이해, 시각적인 효과의 강조, 등장인물의 복식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 등으로 볼 수 있다.

문창제놀이가 창원 지역의 중요한 민속 유산으로 부각이 되면서 여러 단체에서 재현하여 계승ㆍ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과정에서 놀이의 의식과 절차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며, 특히 2과장 추도무의 복식에 대해서는 행사 주최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문창제놀이를 올바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추도무 복식을 놀이의 의미에 맞게 재현해야 한다.

따라서 문창제놀이의 추도무가 관에서 주도하였기 때문에 동원된 무가들이 관기라는 점과 의식이 제의라는 점, 북춤을 추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는 문창제놀이가 기획되고 경상남도의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던 1980년 전 후부터 2019년까지의 추도무에 착용된 복식을 중심으로 그 현황을 분석하고, 문창제놀이 제2과장 추도무에 입는 복식을 문창제 제의에 맞게 제안하는 데 목적이 있다.


Ⅱ. 연구방법

문창제놀이가 역사성과 연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사에서 착용했던 복식의 양상도 역사적 자료에 의한 문헌 연구와 행사를 통한 실증적 자료에 의한 사례연구로 진행하였다.

문헌 연구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국조속례의(國朝續五禮儀) 예서(禮書) 및 선행연구와 두산백과사전과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인터넷 자료를 참고하여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관기 복식, 북춤 및 위령 추모 복식, 제례 복식 등의 이론적 근거를 고찰하였다.

추도무의 복식의 형태와 성격을 올바로 고찰하기 위해서는 황시헌 공이 병자호란 때(1637년, 인조 15)에 전사하고, 현종 때 공조정랑을 포증(褒贈) 받았으므로 당시의 복식자료나 문헌을 자료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구전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당시의 자료를 재구해 내기가 어렵고, 1980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의 자료도 경상남도 문화관광 체육국 자료실에도 보관되어 있지 않아서, 활용할 수 있는 실증적 자료는 1990년대 이후의 향토문화전자대전이나 충신황시헌공연구회의 문창제놀이 대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례연구에 사용된 실증적 자료는 문창제놀이의 발굴 과정에서 추도무 재현 과정을 찍은 사진 자료와 설수석(문창제놀이 전 회장) 소장의 리플렛 자료(1980년 전후) 등이고, 1990년대 자료는 1990년 11월 24일 창원중학교에서 시연했던 문창제놀이의 VTR 자료와 1992년 3월 26일 kbs1 tv에 방영된 자료 및 1997년 5월 10일 경남은행에서 발행한 경남무형문화재를 참고했으며 2000년대는 인터넷(SNS) 상 자료와 2010년 이후는 정충문화재단에서 수집해둔 자료 및 정충문화제 팸플릿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즉 1980년 전후부터 2019년까지 그 동안 문창제놀이에서 입었던 추도무 공연복식의 시각자료와 충신황시헌 공연구회의 추도무 관련 회의 자료를 참고하였다.


Ⅲ. 결과
1. 문창제놀이와 추도무의 성격

문창제놀이는 황시헌이라는 충신과 그와 같이 순절한 군노들을 추모하는 추모행사이다. 황시헌(1606~1637)은 병자호란 때 광주 쌍산령(雙山嶺)에서 1637년(인조 15)에 전사하고, 현종 때 공조정랑을 포증(褒贈)받고 군자정(軍資正)에 추증되었다. 그 후 기일이 되면 자손들이 가례를 모셨고, 창원부사가 관속들과 성묘 제례하고 관기로 하여금 추모의 춤을 추게 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음복 음식을 나누어 주어 놀게 하였다. 이때 군노 한 사람이 황시헌 순절 시의 처참한 모습을 극적으로 연출한 것이 오늘에 전하는 군노놀이라 한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5호 문창제놀이는 모두 4과장으로 되어 있다. Fig.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1과장은 제향으로, 황시헌의 위패를 세우고 부사와 관속들이 헌작하고 고축하는 유교식 제례이다. 제2과장은 추도무로서, 관기들로 하여금 큰북을 가운데 놓고 북을 치면서 춤을 추게 한 데서부터 유래(Kim & Hwang 2012)되어, 부녀자들이 한삼(汗衫)을 끼고 황시헌의 비각 앞에 엎드려 배례하고 난 후 원형을 이루어 한삼을 뿌리고 음률에 맞추어 춤을 춘다(Kang 1997). 제3과장은 군노놀이로, 황시헌이 순절하는 과정을 구성한 것이다. 관군과 호군으로 분장하고 서로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부사가 쓰러지면서 관인을 황시헌에게 던져주니 그가 그것을 오른손으로 쥐려고 하자 적이 오른손을 벤다. 왼손으로 쥐려고 하자 왼손도 벤다. 그는 입으로 관인을 물고 부사를 안고 운명한다. 제4과장은 구천을 떠도는 혼령을 땅에 묻어 진혼하는 굿인 매귀굿인데,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서 노는 장면으로, 보통의 농악대와는 달리 남녀노소가 모두 평복 차림으로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가무하는 것이 특색이다. 이때 막대기를 가지고 군노놀이 흉내를 내기도 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축원문을 외우기도 한다.


Fig. 1. 
Performing costumes for each episode of Moonchang Festival.

문창제놀이의 성격은 제의와 놀이(연희: 演戱)를 함께 치르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제사를 올리는 제의(祭儀)가 제1과장이며, 추도무를 통한 추모제가 제2과장이라면 이를 기리기 위해서 놀이로 승화시켜 연희의 성격을 가진 과장이 제3과장과 제4과장이다. 그리고 제1과장과 제2과장의 제의는 관(官)이 주도하고, 제3과장과 제4과장의 연희는 민(民)이 주도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관과 민이 하나가 되는 공동체적 추모제이다. 문창제놀이의 또 다른 구조는 관이 주도한 제1과장의 제향은 유교적 제의식을 하게 되고, 제2과장의 추모제는 원혼을 달래는 살풀이나 씻김굿이라고 하는 무속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3과장과 4과장의 연희구조는 제3과장 군노놀이의 극적 성격과 제4과장 매귀굿의 원혼을 땅에 묻어 진무하고 천도하는 무속적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관과 민의 구조와 유교적 제의와 무속적 굿, 제례의식과 극적 연희라는 다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2. 관기의 복식

조선시대에 있어서 기녀란 관가에 등록된 기생인 관기(官妓)를 말한다(Kang 2004). 관기는 관비의 일종으로 관창(官娼)이라고도 불린다. 기녀의 복식을 살펴보면 기녀는 천민계에 속하지만 사회 제약을 덜 받는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특수계층으로 상류층 남성의 수준에 맞는 사치스럽고 화려한 차림이 허용되었고, 기녀복식은 일반여성복과 비슷하였다.

Fig. 2 의 풍속화에 나타난 기녀의 복식을 보면 치마는 연청, 진청 등으로 색의 농담이 있기는 하나 주로 청색을 사용하고 상의인 저고리는 소색, 연두색, 노랑 등을 사용하고 있다, Lee & Kim(2006)에 의하면 조선 후기 기녀복식에 주로 사용된 복색은 상의는 양(陽)에 해당하는 정색을, 하의는 음(陰)에 해당하는 간색을 사용하여 상ㆍ하의로 배색하고, 겉감과 안감의 배색에는 상생과 상극의 원리가 적용되었다고 한다.


Fig. 2. 
Gisaeng’s Dress of the Joseon Dynasty by Shin Yoon Bok.

Reprinted from Kangsong Art and Culture Foundation http://kansong.org/museu



조선 후기 충신 이옥(李鈺1760~1815)이 1799년 10월 18일부터 다음 해인 1800년 2월 18일까지 118일간 경상도 삼가현(봉성)에 머물면서 견문한 일들을 적은 봉성문여(鳳城文餘)란 책에 다음과 같이 기녀 복식에 대한 언급이 있다(Choi & Hong 2014).

우리나라는 청색을 숭상하여 백성들이 대부분 청의(靑衣)를 입는다. 남자는 겁(袷)과 납(衲)이 아니면 일찍이 이유 없이 백의를 입지 않고 여자들은 치마를 소중히 여기는데, 더욱 백색을 꺼려서 홍색과 남색 이외에는 모두 청색 치마[裙]를 두른다. 의(衣)는 한 가지 색이 아니지만 삼년복이 아니면 또한 일찍이 백색 저고리와 치마[白衣裳]를 입지 않았다. 유독 영남 우도는 남녀 모두 백색 옷을 입으며 아녀자들은 비록 갓 시집온 사람이라도 백색 저고리와 백색 치마[白衣白裳]를 입는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젊은 아녀자 대부분이 다 리[髢]를 대어 꾸미지 않고 목면(木棉)으로 만든 짧은 백색 치마[白短裙]를 입은 것을 보고 과부인가 의심했는데, 모두 갓 시집와서 치장한 것이었다. 오직 기녀와 무녀만이 청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는다. 그 사람들이 대개 청색을 천시하고 백색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文餘1 鳳城文餘 白衣裳. “我國色尙靑, 民多衣靑衣. 男子 非袷與衲, 未嘗無故白衣, 女子以裳爲重, 尤忌白, 紅藍以 外, 皆繫靑裙. 衣不一色, 非持三年服, 則亦未嘗無故白衣 裳. 獨嶺南之右, 男女皆衣白, 婦女雖新婦者, 亦白衣白裳. 余初到, 見小婦多頭不帶髢, 着木棉白短裙, 疑其孀, 皆新 婦而飾者也. 惟妓及巫女, 衣靑衣裙. 其人, 蓋賤靑而尙 白.”(鳳城文餘 追記南征始末.)).

이상에서 조선 시대 관기의 복색은 대체로 청색과 옥색 천담색을 입은 것으로 알 수 있다. 특히, 영조 2년 10월 2일에 영조가

“병조로 하여금 신칙하도록 하겠다. 국가가 생긴 이래로는 각각 숭상하는 복색(服色)이 있었다. 우리 나라는 동쪽에 있는 나라이니 마땅히 청색을 숭상해야 할 것인데 사람들이 모두 흰 옷을 입으니, 어찌 아름다운 징조이겠는가? 하물며 선왕조의 영갑(令甲)400) 이 있으니 공경(公卿)에서 사서(士庶)까지 길복은 일체로 청색을 숭상하라.(令兵曹申飭。 有國以來, 服色各有所尙。我國, 東國也, 宜尙靑, 而人皆衣白, 豈佳兆乎? 況有先朝令甲, 自公卿至士庶, 吉服一體尙靑)(영조실록 10권)”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 영ㆍ정조 연간 백색금제령 시대에는 관청 소속 관기들의 복색이 청색류이었을 것으로 추증이 된다.

3. 북춤의 복식

북춤은 무고(舞鼓)라고도 하는데 북을 도구로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기록으로 본 무고의 기원은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따르면 충렬왕 때 시중 이혼(李混)이 영해(寧海)에 유배되었을 때 바닷가에서 물에 뜬 뗏목을 얻어 큰 북을 만들었더니 그 소리가 크고 웅장해 북을 두드리며 춤춘 데서 기원했다고 한다.

북춤의 흔적은 고구려 시대 고분 벽화에서도 발견이 되는데, 손북춤과 장고춤으로, 손북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차림은 손북춤의 경쾌한 율동에 어울리게 흰 바지에 연한 붉은색의 저고리를 입고, 흰 허리띠를 띤 소박한 것이었다. 장고춤을 춘 남자 춤꾼들의 옷차림은 바지, 저고리 위에 긴 겉옷을 걸친 차림새였다. 겉옷 색깔은 회푸른 색을 띤 것으로서 깃에는 흰선을 달았다.

조선 말기까지 계승되어 온 북춤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장고춤과 세운북춤, 큰북춤 등이 있었다.

장고춤은 남녀가 즐겨 추는 민속무용의 하나로서, 후세에 오면서 여자가 추는 장고춤을 널리 추게 되었다. 민간에서 여자들이 장고춤을 출 때에는 일상의 옷차림과 별다른 것이 없이 치마저고리를 입고 버선에 짚신을 신었으나 젊은 여자들은 흔히 회장저고리를 입고 차림새를 화려하게 하였다. Fig. 3은 진도북춤으로 북을 메고 춤을 추는 데 편리하게 치마를 약간 걷어 올려 허리끈으로 고정시켰다. 이렇듯 장고춤 옷이나 진도 북춤옷은 장고춤이나 진도북춤의 민간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옷 자체도 일상으로 근로 여성들이 입던 옷과 별 차이가 없었다.


Fig. 3. 
Jindobukchum.

Reprinted from https://cafe.naver.com/photolabo/63466



세운북춤은 세운 북을 무용수가 두드리면서 추는 예술 무용이다. 세운북춤은 주로 궁중에서 춘 춤으로서 의상은 궁녀들의 옷에 기초하여 만든 것이다. 무용수들은 치마저고리에 원삼을 입거나 쾌자를 입었으며 머리에는 화관을 썼다. 그리고 흰 버선에 비단신을 신었다. 세운북춤의 무용수들이 입은 원삼이나 쾌자는 우아한 무용 동작에 어울리게 만들어진 것이었으므로 어깨에는 여러 가지 무늬로 곱게 꾸민 장식이 있었다.

큰북춤은 큰북을 중심으로 네 명의 여자 무용수가 추는 예술 무용으로 주로 궁중의 축하연 등에 사용된 춤이다. 추도무의 북춤은 큰북을 가운데 두고 춤을 추는 것으로 큰북춤의 일종이다.

Fig. 4는 원행을유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중에서 상단에 있는 북과 무희가 있는 부분을 확대한 것으로, 봉수당진찬도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태극문양의 큰북을 4명의 무희가 둘러싸고 있는데, 네 명의 무희는 모두 치마, 저고리에 색동 한삼을 하고, 노란색 몽두리를 입고 붉은 비단 띠를 띠었으며, 머리에는 모두 높은 화관을 썼다. 치마는 두 벌을 껴입었는데 속에 입은 치마는 남색이었고, 겉에 입은 치마는 붉은색이었다.


Fig. 4. 
A part of a Bongsudang JinChanDo (奉壽堂進饌圖).

Reprinted from emuseum http://emuseum.go.kr



큰북춤에 대한 묘사는 평안감사환영도에서도 볼 수 있는데, Fig. 5는 평안감사환영도(平安監司歡迎圖) 중 부벽루연찬도(浮碧樓宴會圖)의 일부를 확대한 것이다.


Fig. 5. 
A part of a pyeong-an-gam-sa hyangyeon-do (平安監司饗宴圖) by Kim Hongto.

Reprinted from emuseum http://emuseum.go.kr



북춤을 추는 무희는 몽두리 대신에 쾌자를 입었으며, 두 명은 청치마에 자주 회장의 흰색 저고리에 자주빛 쾌자를 입었고, 두 명은 붉은 치마에 녹색 쾌자를 입었다. 그리고 네 명 모두 청색 띠를 띠었으며 머리에는 가리마를 썼다.

1829년(순조 29)에 편찬된 『진찬의궤(進饌儀軌)』 권3에 따르면, 무고(舞鼓)의 의상은 무원(舞員)이 화관을 쓰고 청·적·흑·초록 단삼(單衫), 속은 남색상(藍色裳), 거죽은 홍초상(紅綃裳)을 입고 홍단금루수대(紅緞金鏤繡帶)를 띠며, 오채한삼(五彩汗衫)을 매고 초록혜(草綠鞋)를 신는다. 또, 1848년(헌종14)의 『진찬의궤』 권3 정재여령조(呈才女伶條)에는, 위 여령의 복식과 같고 황초단삼(黃綃單衫)에 각각 청·홍·흑·백의 쾌자를 입는 것이 다르다.

1877년(고종 14)의 『진작의궤』에서는 원무가 자적갑사괘자(紫的甲紗掛子)에 남전대(藍戰帶)를 띠는 점이 순조, 헌종 때의 복식과 다르다고 되어 있다(Kim 1995).

현재 전래 되고 있는 북춤으로는 통영의 승전무와 동래고무가 있다.

통영 승전무(勝戰舞)의 창사(唱詞)는 이순신의 충절을 받들며 승전을 축하하고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내용으로, ‘통영북춤’이라고도 한다(Medical Korea 2011). Fig. 6에서와 같이 북을 중앙에 두고 원무(元舞) 4명이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북을 울리며 가무(歌舞)를 한다. 이때 네 명의 무용수는 오행(五行)을 나타내는 4방색의 복식(服飾)을 입고,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춤을 춘다. 아울러 원무를 에워싼 협무(挾舞) 12명이 둘레를 돌며 창을 한다. 춤추는 도중에 창사도 부르고 있어 노래하며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형식의 악(樂), 가(歌), 무(舞) 일체의 군무(群舞)이다(Cha 2009).


Fig. 6. 
Tongyeong drum dance, by Hong Kyengchan.

Reprinted from Seoul Culture Today (2010.07.26. 00:06)



동래고무는 고려 초기 궁중여악(宮中女樂)을 관장했던 교방청(敎坊廳)에 의해 행해졌던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인 무고가 동래 관아의 교방으로 전해지면서 지역의 특성에 따라 「동래고무」라는 명칭으로 불려오고 있다. 이 춤의 구성 및 내용은 장단의 변화에 따라 진행되는데, 중앙에 큰북을 놓고 4명의 무원(舞員)과 함께 군무를 이루어 8고무(八鼓舞)로 형성하여 진행하며, 복식은 Fig. 7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무는 연두색 원삼에 홍치마 연두저고리를 입고, 협무는 평복차림의 홍치마 연두저고리를 입는다(Choe 1999).


Fig. 7. 
Entertainment Show in Dongnae.

Reprinted from http://www.grandculture.net/(향토문화전자대전)



위에서 살펴본 북춤 시각자료와 진찬의궤에 제시된 무고는 한결같이 진찬(進饌)이나 연회, 승전제 등 축하연에서 행해졌던 것으로, 이 때의 복식은 황색의 몽두리나 청, 홍, 흑, 백의 쾌자, 초록 원삼 오방색 한삼을 입음으로써 탄생과 강녕을 축원하고 참례자들에게 흥을 돋구는 구실을 한 것이다.

이에 비해 문창제놀이 제2과장의 추도무는 억울하게 죽어간 황시헌 공과 군노들의 원혼을 달래는 살풀이의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살풀이춤은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는 위령제의 성격이 있으며, 살풀이춤의 복식은 Fig. 8에서와 같이 치마와 저고리에 쪽을 지고, 흰 수건을 들고 춘다. 수건으로 무수한 선을 그리는 것은 원초적으로 살을 풀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왔다고 하며, 기방예술로서 수건놀음은 여인의 한풀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An 1995). 살풀이는 죽은 이의 살을 풀어주어 원혼을 달래는 춤으로 옷의 색은 흰색이거나 청색 또는 천담색을 주로 입는다.


Fig. 8. 
97th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Salpuri Dance.

Reprinted from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



Table 1은 위에서 살펴 본 북춤옷을 정리한 것으로, 장고춤과 살풀이춤의 복식과 머리는 민간의 치마저고리에 일반 부녀자의 쪽진머리인 것에 비해 세운 북춤과 큰북춤의 복식은 치마, 저고리 위에 원삼, 단삼을 입거나 몽두리 또는 쾌자를 덧입고 대(帶)를 하여 춤추는 동작을 용이하도록 했다. 특히 큰북춤을 출 때 원무의 옷은 사 방위를 나타내는 청·홍·흑·백의 겉옷을 입고, 협무의 옷은 황원삼, 자적쾌자 등의 겉옷을 덧입었다. 손에는 한삼을 하고, 머리에는 족두리나 화관 또는 가리마를 쓰는 등 궁중의 궁녀들이 입는 복식과 일치한다.

Table 1. 
Item & color about drum dancing
Drum dance Item & color
Goguryemural
paintings
Hand drum dancing
Jango dancing
White Barji, Red Jeogori, White Waist band
Barji, Jeogori, grayish Blue coat
Jango dancing Chimajeogori, ornamented Jeogori
sewoon drum dancing Chimajeogori, Wonsam, Kwaeja
Big drum dancing Bongsudang JinChanDo Chimajeogori, Saekdong Hansam, Yellow Mongduri,
Red Waist band, Blue Sang, Red Chosang
pyeongangamsa
hyangyeondo
Blue Sang, White Jeogori, Purple Kwaeja, Hwagwan
Red sang, Green Kwaeja, Blue Waist band, Garima
Jinchanuigwe Sunjo 29 Hwagwan, Blue, Red, Black, Green Dansam, Blue Sang, Red Chosang,
Hongdangeumrusudae, 5color Hansam, Green Hye.
Heonjong 14 yellow Chodansam, Blue, Red, Black, White Kwaeja
Gojong 14 Purple Kwaeja, blue pouch
Tongyeong drum dancing Blue, Red, Black, White Kwaeja,
Enterainment show in Dongnae Red Chosang, Yellow-green Jeogori
Salpuri Chimajeogori,, ornamented Jeogori

4. 조선시대 여성 제례 복식

조선시대 제례복은 제의가 주로 남성 위주로 치러졌기 때문에 제례복에 대한 문헌은 왕과 사대부 및 남자 중심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다. Table 2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예서’에 나타난 제례복식인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 제례복식에 대한 문헌 자료는 찾기 어렵다. Table 2는 율곡 이이가 1577년에 아동들의 교육을 위해 저술한 격몽요결(擊蒙要訣)과 사계 김장생이 1599년에 중국 송대 주자가례를 중심으로 엮은 가례집람(家禮輯覽), 그리고 밀암 이재가 1844년 관혼상제에 관한 종합적 참고서인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나타난 제례복식을 요약한 것이다.

Table 2. 
The ritual costume in the books about courtesy during the Joseon Dynasty(Ma et al. 2008)
Gyeog-mong-yo-gyeol Ga-lye-pyeon-lam Sa-lye-pyeon-lam
Gi-je Male More than grandparent Public officer black sa-mo, jade dan-lyeong, White gag-dae po-gwan, so-dae, ma-ui (great-grand father, grandfather) so-gwan, po-dae , ma-ui (great-grand mother, grandmother) black blue jeog-sam
Non public officer black lib, jade dan-lyeong, White tti
Parent Public officer White mo-ja, jade dan-lyeong, White gag-dae po-gwan, po-dae, ma-ui, ma-li (father) so-gwan, po-dae , ma-ui, ma-li (mother) black blue sa-mo, black blue be-jeog-sam, be-gag-dae
Non public officer White pae-laeng-i, jade dan-lyeong, White tti
Other Public officer black lib, jade dan-lyeong, black tti so-gwan-dae, ma-ui (uncle)
ma-ui, so-dae (aunt)
black jeog-sam
Female More than grandparent black bae-ja, White ui, jade sang teug-go-geo-sig teug-go-geo-sig
Parent White bae-ja, White ui, White sang white keun-os
Other non fancy clothes pale yellow bae-ja
Sa-dang-je Male dan-lyeong, jig-lyeong sim-ui
Female gwan-pi-dae-ui-jang-gun
Sa-si-je Male Public officer sa-mo, dan-lyeong, pum-dae sim-ui
Non public officer dan-lyeong, sil-tti
Female fancy clothes
Myo-je Male black gas, White os, black tti sim-ui

Table 2에서 나타난 조선시대 제례복 가운데 여성의 제례복에 주목한다면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는 부모 기제에만 백색 치마 저고리를 입었고 그 외 조(祖) 이상의 기제에서는 흑색이나 옥색 치마를 입게 하였다. 그리고 기타 제에서 여성은 화려한 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 가례편람에서는 모두 특별히 드러나는 옷이나 장식을 한 옷은 입지 않도록 하였다. 사시제에서 여성복은 극히 고운 옷을 입도록 하였다. 사시제는 기제사와는 달리 조상을 추모하기보다는 설과 추석과 같은 계절마다 조상에게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축제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고운 옷을 입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Ma et al.(2008)의 종가의 제례복식에 관한 연구 중 거창 초계 정씨 종가의 제례복에 대한 자료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제례복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제사 시 제주는 도포에 유건을 쓰고, 주부는 옥색 치마와 옥색 저고리인 천담복을 입는다”고 하여 조선시대 여성은 옥색 저고리인 천담복을 제례복으로 입었음을 알 수 있다.

5. 무형문화재로서의 문창제놀이 추도무 복식의 현황

문창제놀이가 경상남도의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던 1980년 전 후부터 2019년까지 추도무에 착용된 복식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시각자료 중 최초의 것은 문창제놀이의 발굴 과정에서 황시헌 공의 후손인 황 호로부터 추도무 재현 과정을 전수받은 정경수 복원자의 고증 광경을 찍은 사진 자료이다(Fig. 9 참고). 황 호는 1906년 경 황정량 즉 황시헌 공의 놀이 굿판을 따라다니면서 직접 몸으로 체득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Kim & Hwang 2012). 이 때 의복은 평상복 차림이나 양손에 흰색 한삼을 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Fig. 9. 
Representation of memorial dancing (1976).

Fig. 10은 문창제놀이 보존협회 2대 회장인 백종기(전 경남여상 교장)와 박혜경(전 경남여상 무용교사)의 지도로 공연한 장면이다. 인쇄물만으로 복식의 형태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허리 부분은 가늘고 아랫단이 매우 넓은 것으로 보아, 하의는 드레스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상의는 몸에 맞으면서 소매는 배래가 넓은 아리랑 드레스의 형태이다. 색상은 상의 몸판은 옥색이고, 치마와 상의의 소매 부분은 더 옅은 옥색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몸판과 치마 부분은 옥색 소재의 안감 또는 비침 방지를 위해 두꺼운 소재를 사용하고 소매는 얇고 부드러운 소재로 살이 비쳐 보이는 소재를 사용하였으며, 치마 위에는 흰색의 얇은 샤를 덧대어 입고 있다.


Fig. 10. 
Memorial dance costume of the early 1980s at the Moonchang Festival.

Fig. 11은 1992년 3월 26일 kbs1tv ‘생방송 지방시대’에서 방영된 문창제놀이 추도편의 영상에서 취한 것이다. 원무(元舞) 4인의 복식은 노란색 치마에 4방위를 표하는 녹색, 적색, 백색 흑색의 금박을 올린 원삼을 입고 홍대를 하고, 색동 한삼에 홍색 댕기를 드리우고 있다. 머리에는 화관을 썼으며, 협무(挾舞) 8인의 복식은 홍색 치마에 홍색 깃과 금박을 올린 황원삼을 입고 홍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색동 한삼에 홍색 댕기를 드리우고 화관을 썼다. 1990년 창원중학교에서 시연했던 추도무 공연 의상 및 1997년 경남은행에서 발행한 경남무형문화재 리플랫의 추도무 자료도 Fig. 4과 대동소이하다.


Fig. 11. 
Memorial dance costume at the 1992 Moonchang Festival.

Fig. 12는 2001년도 안남 초등학교의 운동회 때 추도무 시연 장면인데, 흰색의 깃과 섶이 없는 생활복 상하의에 흰색 한삼과 족두리를 하고 있다(Jin 2012). 이는 아마도 1995년 무형문화재 기능 발표회의 평가에서 그 당시 착용했던 ‘활옷인 추도무 의상이 제향과 상반되므로 소복 차림의 추도무 공연이 바람직스럽다’고 한 문화재평가위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흰색 차림을 한 것으로 보인다.


Fig. 12. 
Memorial dance costume in 2001 at Annam Elementary School Sports Day.

Fig. 13은 2008년 문창제놀이 추도무 공연 장면으로 흰색 치마저고리에 흰색 몽두리를 덧입고 흰색 대(帶)를 하고, 흰색 한삼과 흰색 비녀와 흰색 족두리를 하였다. 원무를 하는 4인은 북채를, 협무를 하는 4인은 흰 꽃을 들었다. 이 차림은 꽃받침의 색상이 바뀌거나 공연장소가 야외로 하는 등 약간의 변화는 있으나 2008년 이후 2016년, 2017년, 2018년 계속 유사한 차림을 유지하였다.


Fig. 13. 
Memorial dance costume in 2008 at the Moonchang Festival.

Fig. 14는 2019년 문창제놀이 연수·시연회 장면인데, 보는 바와 같이 옷차림이 잘 정비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이한 점은 2001년 이후 사라졌던 적색과 흑색의 원삼과 색동 한삼, 화관의 출현인데, 이는 2016년 소복을 입은 문창제 추도무에 대해 ‘장례는 흉사로 보고 흰옷을 입고, 제사는 길사로 봄으로써 색동옷을 입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문화재 위원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Fig. 14. 
Memorial dance costume at the Moonchang Festival in 2019.

문창제놀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던 1980년부터 최근 시연회를 한 2019년까지의 추도무의 변천 과정을 착용된 복식과 추도무 복식 평가 중심으로 요약하면 Table 3과 같다.

Table 3. 
Changes in performance costumes for the moonchang festival over the years
Before 1980 Daily wear, white Hansam The restoration time of Moonchang Festival Games
Dec. 26, 1980 Sobok
organized by Jung Gyengsu
· Designated as Gyeongnam Cultural Treasure.
· A judgment committee member asked for replacing clothes by another because Sobok look like mourning clothes.
Early 1980s Jade-green dress
organized by Baek Jonggi
Nov. 24, 1990 White chima, 4- direction -colored Wonsam (green, red, white, black) & yellow Wonsam, Saekdong Hansam
organized by Jung Gyengsu
Mar. 26, 1992 Yellow chima, 4-direction-colored Wonsam (green, red, white, black) & yellow Wonsam, Saekdong Hansam
organized by Jung Gyengsu
1995 · In a meeting of functional evaluation, mourning clothes was recommended to be desirable as memorial dancing costume.
May. 10, 1997 Red chima, 4-direction-colored Wonsam & yellow Wonsam , Saekdong Hansam
organized by Jung Gyengsu
2000 White reformed modern style 'hanbok’ white Hansam, white Jokduri · Performance in Annam Elementary School sports festival
· Designated as a leading school in the field of traditional culture
· Annual performance in the school sports festival from then on
2006, 2008, 2014 White Chimajeogori. white Mongduri, white Hansam
organized by Seol Suseok
2016 A judgment committee member presented an idea of wearing multicolored clothes, for funeral is a unfortunate event and memorial service is an auspicious event.
2017, 2018 White Chimajeogori. white Mongduri, white Hansam
organized by Seol Suseok
2019 Red-and-black Wonsam, Saekdong Hansam,

Table 3에서 알 수 있듯이 1980년 경남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면서 문화재 위원의 의견에 따라 복색이 재정비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는 일상복으로 춤사위를 전수했던 것이 공연을 위한 의상을 마련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소복이 부적절하다고 하는 당시 문화재위원이었던 강용원 교수(전 동아대 교수)의 이의 제기가 있어 의상 교체를 요청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980년대에는 옅은 옥색의 의상(淺淡服)을 입고 공연하였다.

1990년 추도무 공연의 복식은 황원삼에 색동 한삼 차림으로 화려하게 변화되었다. 이는 공연 주최자가 바뀌었고, 또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문창제놀이의 성격이 10여 년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추도무 복식에 대한 개념이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1992년, 1997년, 1990년대에는 이러한 추도무 복식(황원삼, 색동 한삼, 화관)이 계속되었는데, 1995년 11월 25일 창원초등학교에서 실시한 무형문화재 기능발표회의에서는 ‘추도무 의상이 제향과 상반된다.’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소복의 추도무를 착용하게 되었다.

이후 몇 년간 공연이 중단되었다가 2000년 안남 초등학교에서의 문창제놀이 공연에서는 흰색의 상의와 치마를 착용하였다. 이는 문화재평가 위원의 의견을 반영하여 소복임을 드러내는 흰색 의상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06년, 2008년, 2014년의 공연에서는 흰색 치마 저고리에 흰색 몽두리를 착용하였다. 2016년에 문화재위원이 장례는 흉사로 보고 흰옷을 입지만 제사는 길사로 봄으로써 색동옷을 입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이후 2017년, 2018년에는 복색의 변화가 없이 흰색 치마저고리에 흰색 몽두리 차림의 공연을 계속하였다. 2019년에는 흰색 몽두리와 적색, 흑색 원삼을 혼재해서 입은 상태로 시연회를 가졌다.

Table 3을 통해서 본다면 문창제놀이에서 추도무의 복식은 일정 기간을 두고 행사 때마다 달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 지정 이후의 추도무 복식은 장식적이고 과장된 양식으로 수정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재 지정이 오히려 정형화 이전의 왜곡을 가져온다고 한 Yi(2001)의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복원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연희자들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단서였으므로 임의적이고, 그릇된 방향으로 변화되어도 다시 바로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순수한 전통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원형보다 장식을 더 많이 하게 되고 화려하게 표현함으로써 의도적으로 가시성을 더 높이려고 하였다. 이는 행사 주최자나 주관자에 따라 행사의 외형적 형식이 달라지는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문화재로서 문창제놀이가 올바로 정착되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Ⅳ. 고찰

문창제놀이 행사에서 착용해 왔던 추도무 복식이 일관되지 못하고 행사 때마다 달리하는 문제를 확인하였다(Table 3). 문창제놀이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행사이기 때문에 행사 내용 또한 역사성과 전통성을 유지해야 한다.

조선시대 여성은 상복으로는 소복을, 제례복으로는 옥색 저고리인 천담복을 입었는데, 기녀복식은 일반여성복과 비슷하였고, 조선 후기에 조정을 비롯한 관청에서 백색 옷 착용을 제약하는 백색금제령에 따라 관청 소속의 관기들의 복색은 청색류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창제놀이 대본에서 ‘북을 치면서 춤을 추었다’라는 기록만으로 관기들이 어떤 복식을 착용하고 춤을 추었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여러 관기들이 제의 추도무에서 북춤을 춘 자료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북춤의 시각자료(Fig. 3~6)와 진찬의궤에 제시된 무고는 한결같이 진찬(進饌)이나 연회, 승전제 등 축하연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이 때의 북춤을 추었던 관기나 무희들의 복색은 자연스럽게 황색의 몽두리나 청, 홍, 흑, 백의 쾌자, 초록원삼 오방색 한삼등을 입음으로써 탄생과 강녕을 축원하는 의미의 복색을 입고 참례자들에게 흥을 돋구는 구실을 한 것이다. 1990년대 문창제놀이 추도무에서 화려한 오방색을 차려입고 북춤을 재현하려고 한 것은 조선시대 잔치연이나 승전무와 같은 축연의 자리에서 화려한 오방색을 입고 북춤을 추는 장면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창제놀이의 추도무는 축연이 아님에 주목해야 한다. 문창제놀이는 황시헌 공을 추모하고 추도하는 제의이고 억울하게 죽은 군노들의 원혼을 달래는 진혼제나 위령제 및 천도제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화려한 오방색으로 기쁨을 노래하고 춤을 추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진혼제나 위령제 및 추모제에서의 북춤은 장엄하면서도 엄숙하고 진중해야 한다. 다만 살풀이나 씻김굿에서도 북춤을 추는 경우가 있다는 것과 문창제놀이의 추도무 성격으로 볼 때 관기들은 화려한 오방색이 아닌 청의에 흰 저고리를 입거나 천담색이나 소색복을 입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문창제놀이 제2과장의 추모무는 억울하게 죽어간 황시헌과 군노들의 원혼을 달래는 살풀이의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문창제놀이 제2과장 추도무에서 죽은 영혼을 달래는 진원무나 살풀이 춤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복색은 흰색이거나 천담색을 입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Ⅴ.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5호인 문창제놀이의 제2과장 추도무 공연에서 착용하는 복식을 올바로 재현하고자 했다. 문창제놀이 추도무에 착용했던 복식이 1980년부터 2019년 사이에 일정 기간을 두고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에 따라서 달리함으로써 논란이 되어 왔다. 따라서 문화재라는 전통성과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추도무의 복식은 추도무의 성격에 부합하도록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본다.

문창제놀이는 제의와 놀이를 함께 치르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제1, 2과장은 관이 주도하면서 관기에 의해 추도무가 행해진 제례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추도무의 복식은 관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관기의 복식, 추도무에 북을 사용한 북춤이라는 점에서 북춤의 복식, 그리고 혼을 위로하는 위령과 제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추도무에서 시연을 하는 관기들의 복식은 북춤을 추기에 적합한 몽두리나 쾌자를 입되 그 색상은 제례복과 관기의 복식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조선 후기의 관기들이 입었던 색상은 치마는 연청, 진청 등으로 색의 농담이 있기는 하나 주로 청색을 사용하고 상의인 저고리는 소색, 연두색, 노랑 등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영조 당시 궁중이나 관에서 소복을 입기보다는 천담복이나 옥색을 입도록 하는 소복 금제령이 있었기 때문에 관기는 평상시에 백색 소복을 입을 수가 없었다. 조선 후기여성 제례복은 당시 부모상 이외에는 소복을 입지 않도록 하면서 천담복(옥색)과 같은 소박한 옷을 입도록 했으며 화려한 옷을 입지 않도록 했다.

따라서 추도무 복식은 황시헌 공이 전사한 후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의복의 색은 청색이나 천담색에 해당하는 옥색으로 하고, 복식의 형태는 북춤을 추기에 용이하도록 소매가 크지 않고, 짧거나 없는 몽두리나 쾌자를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러한 복식은 한삼을 들면 춤동작에 제약도 적고, 춤동작을 따라 흔들리는 겉 옷자락과 한삼 자락의 흐름이 조화를 이룰 것으로 생각한다. 머리 장식은 보석 장식이 없는 족두리나 가르마 정도로 조금 수수하게 하기를 제안한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복식도 변화하기 마련이며, 그에 따라 전통은 또 다른 모습으로 규정되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문창제놀이는 공연과 같은 방식을 통해 전승될 것으로 보이며, 복식도 이에 편승할 것이다. 즉, 복식은 문화의 일부로 계속적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므로, 복식 문화를 단지 과거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지역과 시대적 변화과정을 포괄한 것으로 한국 복식 및 전통 문화의 현재적 모습을 재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문창제 놀이의 제2과장 추도무의 복식은 추도무가 가지고 있는 성격과 여성 제례복의 문헌적 근거에 따라서 올바로 고증되어 행사 때마다 달라지는 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Acknowledgments

This research was supported by Changwon National University in 20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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